삼국시대 성립전에 유방이 세운 한왕조의 수도는 낙양이 아니라 장안이였다. 나중에 수도는 낙양으로 옮겨졌으며 조맹덕이 이각과 곽사의 난으로부터 헌제를 구한후 허창으로 천도를 했다. 다시 말해 장안은 서천에 가깝고 허창은 형주에서 가깝다. 한실 부흥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황제가 있는 허도를 점령하고 천자를 보좌한는 것이다. 만약 서천을 공격의 거점을 잡았다면 허창으로 가기까지 많은 곳을 거쳐야 한다. 서천과 장안을 있는 한중을 먼저 점령해야 하며 옛수도인 장안을 점령한후 2개의 관문을 통과해 낙양을 점령하고 허창에 이를수 있다. 즉 ‘멀리 돌아가는 격이다’. 하지만 만약 형주를 공격의 거점을 잡는 다는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닫는 거리다. 그런데 왜 제갈량은 아주 무식하게 중원 공략의 거점을 형주로 두지 않고 한중으로 잡았을까? 바로 ‘정통성’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제갈량을 4차 북벌정벌을 시도한 후에 과로사로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웠다. 당시 내정을 맞고 있는 비위는 승상인 제갈량에게 왜 굳이 기산으로 나아가길 고집하냐고 물었다. 그때 제갈량은 한왕조의 성립한 과정을 설명하고 어떻게 장안을 점령했는지 설명했다. 무지한 이가 그냥 듣기에는 역사에 사용 되었던 정공법을 고집하는 제갈량이 위대하게 보였을지 모르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왕짜증이 났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즉 수도가 바뀌었으니까 500년전에 사용한 정공법이 먹힐 일이 없다. 그런데 제갈량은 이 방법을 고집했고, 제자인 기린아 강유도 9번이나 똑같은 방법으로 북벌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서 난 음악과 한번 연결해 보았다. 고전시대에는 공연장은 지금의 오페라 하우스 같이 크지 않았다. 즉 소규모의 실내악단으로도 좋은 효과를 낼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많은 관객을 소유할수 있는 공연장과 과학적인 음악시설들이 갖추어 진 이때에 바로크 시대엔 X명으로 오케스트라가 구성되었으니 전통을 살려서 똑같이 하자고 한다면 당연히 예전에 느꼈던 웅장함을 느낄수 없을 것이다.
나의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난 전통성과 정통성을 지나치게 중시한다. 현대판 음악은 깊이가 없는 primitive한 modern junk라고 간주한다. 현대판 경영방식은 우유부단함과 주체성 상실 그리고 지나친 포용과 배려에 중심을 맞춘다. 그리고 현대판 흐름에 맞추어 가는 것이 사는 방법이라고 애기 할때, 난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는 자가 성공하는 자라 말한다. 하지만 나의 이렇게 지나친 전통성과 정통성에 대한 촛점이 내가 항시 말하는 미래객체지향주의적 사고방식에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도 된다.
만약 내가 똑 같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시도해서 9번 실패 한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전통성을 지키다가 사라진 한 시대의 아쉬운 영웅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외골수로 달걀고 바위치기를 시도한 미련한 졸장부로 평가를 받을 것인가…. 이제 중원의 공략 거점을 아무래도 형주로 바꾸어야 될 시기가 온것 같다.
바로 한중은 내 자신을 믿고 출발하는 지점이고, 바로 형주는 하나님을 믿고 출발하는 지점이다. 난 한중을 지나 장안을 점령 했지만 더 이상 나만의 힘으로 중원 평정은 불가능한것 같다. 다시 전세를 가다듬고 다시 새롭게 형주에서 출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