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었다. 이번주 목요일에 있을 이사회를 위한 준비에 몰두하는라 시간이 이렇게 가는줄 몰랐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가볍게 샴페인 한잔과 함께 한국에서 주문한 시디중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의 1악장을 들었다. Allegro Con Brio 속도는 나의 귀에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아쉽게도 지휘자의 이름은 잊어 버렸지만 작곡가의 해석에 지나치게 충실하지 않고 decrescendo와 crescendo를 확실히 사용하여 강함과 여림의 시작과 끝을 명백히 구분하고, 또 꼭 현악기의 연주법을 바로크 시대를 연상 시키는 듯한, 즉 각이 있고 절도가 있게 했다.
난 ‘운명’ 교향곡을 이렇게 받아 드린다. 전혀 생각지도 상상치 못한 ‘운명’이 나에게 다가 왔을때의 당황 그리고 절망이 나를 압도한다. 그 다음에 정신을 가다듬고 내 자신을 점검한다. 그리고 내 자신을 운명이 이끄는 문으로 조심히 다가간다. 그리고 그 문을 열었을때의 나를 앞도했던 절망과 공포를 다 물리치고, 새로운 시작과 함께 힘차게 전진한다. 이것이 내가 받아 들이고 해석한 운명 교향곡이다.
내 운명은 과연 무었일까? 내가 존경하는 분은 36살때에 일본에서 사용하는 최고의 존칭 ‘사마’라고 불렸다. 내 나이는 32살이다. 난 언제 ‘조사마’라고 불릴수 있을까?
지금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듣고 있다. 비록 2분 56초 밖에 않되는 짧은 곡이지만 정말 신나는 음악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라데츠키 장군, 나폴레옹에게 대항하여 여러 공을 세운 장군을 기념하기 위해서 요한 스트라우스는 이 곳을 작곡했다. 난 언제 누가 나를 위해서 ‘조후혁 행진곡’을 작곡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