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린이 주일이였다. 목사님의 설교 노트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셔서 통역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세번째 하는 통역인데 점점 어려워 진다)
어린이 주일이니 당연히 어린이들이 노하게 하지 말라라는 설교였다. 다음주는 어버이 주일이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내용의 설교일것이고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예배 후에 부를 것이며 눈물을 흘리는 자가 많을 것이다. (매해를 이렇게 했다)
잠깐 생각이 났다.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말이다. 애들이 잠자리 들때 애들이 아빠 모습을 보고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게 해주라고. 내가 아빠로써 해줄수 있는 이런 것들을 해주라고.
과도한 업무와 MBA수업 때문에 난 아내와 자녀들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기 힘들다. 난 위의 내용이 지극히 정상이며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이것이 나의 독특한 일반인들이 할수 없는 생각이다 – 아빠는 나를 위해서 잠자리에 일찍들지 아니 하시고 우리를 위해 늦게까지 기도하시고, 자아 개발을 위해 쉬지 않고 공부하시며, 회사에서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은 분이시기에 주야로 번민하고 준비하신다라고.
역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다. 아니 아마도 내가 독특한 탓에 나는 나와 같이 잠드는 아빠를 보면 이렇게 생각이 될것 같다 – 잠이 많은 자는 게으르다고 했으며, 한가정의 평화 번영은 부모의 간절한 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으며, 사회에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회사에서 중임을 맞지 않으니 잠이 길어짐이 당연하다고.
내 자식들이 이렇게 분석하고 판단할 나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든다. 하지만 그들의 나의 피를 1/2 받았다면 늦어도 국민학교 4학년 전에는 깨우칠것이다. 좋은 부모는 항상 자신 곁에 있어주고 돌보아 주면서 동시에 자아개발과 자아생존의 방법을 터득하고 흡수하며 독립성과 자존감을 키워는 주는 자라는 것을…. 난 단순히 ‘좋은’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 난 ‘훌륭하고 존경 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 평가는 내 자식들이 얼마나 빨리 자기 힘으로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가고 사회에 똑바로 설때에 평가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