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루지 못한 일들을 점검해 보았다. 그중 하나가 ‘아버지 학교’ 참석이 였다.
매년 있는 행사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아무도 나에게 출석하길 권유도 강요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그냥 소리없이 기회를 놓친것 같다. (아쉽게도 내 ‘기린아’는 나를 저버리고(?) 혼자 ‘아버지 학교’에 참석을 했다. 나도 한번 좋은 세미나를 말하지 않고 혼자 참여해서 동등하게 만들까?)
여러가지 책자를 정리하는 과정중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라는 구절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것에 이어 ‘자식은 하나님이 키우는 것이다’라는 구절도 덩달아 생각났다.
먼저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라는 구절을 생각했다. 난 수많은 위인전과 현대 경영자들의 성공기를 읽어 보았다. 그중 훌륭하게 자식들을 키우고 양육하여 부모가 위룬 업적과 신화를 존속 시킬수 있게 한 자들은 결코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란 애기를 한적이 없다. 반면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진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식 농사는 마음데로 않된다’라는 말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원본초의 아들 원담, 원회, 원상이 아비됨의 반도 못됨을 보고 하늘의 뜻이라고 탓했다고 했던가?)
거기에 더 하나 보태서 ‘자식은 하나님이 키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왜 이렇게 애기 할까? 자식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들을 교육하고 양육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과 의무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녀들의 주체성과 정체성, 그리고 자신이 존재 하는 목적과 대의명분을 확실히 심어주고, 이것을 이루기위한 모든 기회 제공과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이행치 못하는 부모들이 ‘자식은 하나님이 키우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자주 사용한다. 내 귀엔 하나의 현명한 조언 보다는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는 변명으로 들릴 뿐이다.
호랑이는 고양이 새끼를 낳지 않고 용은 뱀의 새끼를 낳지 않는 법이다. 자식들이 범과 용 같은 아비를 볼때 그리고 뚜렸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만인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주야로 기도하고 쉬지 않고 노력하는 아비를 보면 어찌하여 그들이 어찌하여 부모 뜻에 합당치 않은 길을 걸을수 있겠는가?